아무리 지천으로 널린 채소라도 이유 없이 오래 사랑받지는 못한다. 무가 몇 천 년을 지나오는 동안 꾸준히 밥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탁월한 맛과 효능이 있었을 터이다.
무는 무청부터 뿌리까지 버릴 부분이 없다. 영양소도 식이섬유와 비타민C, 칼슘, 칼륨 등이 풍부하며 특히 무청에는 베타카로틴도 많으니 버리지 말고 먹도록 한다. 껍질 부분은 잔 수염이 붙어 있고 거칠다는 이유로 두껍게 깎아내기 일쑤다. 그러나 속보다 비타민C가 곱절로 들어 있으니 깨끗하게 씻어내고 껍질째 먹으면 좋다. 그리고 무에 들어 있는 영양성분 중 주목할 것이 각종 효소다. 탄수화물 소화를 촉진하는 ‘디아스타아제’가 듬뿍 들어 있어 곡식 위주의 식사를 하던 한국인의 밥상에는 제격이었다.
옛말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의 김칫국은 동치미나 무김치 국물을 뜻하는 것. 시루떡에 무를 넣어 익히는 조리법도, 없던 시절 떡만 보면 과식하던 이들을 위한 지혜이기도 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쇠고기나 고등어 요리에도 무가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것도 ‘아밀라아제’라고도 불리는 이 효소의 덕을 얻기 위함이다.
<동의보감>에도 보리와 밀로 만든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무를 날 것으로 씹어 삼키면 해독된다고 쓰여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육류를 날마다 먹고, 쌀보다 밀가루 음식이 친숙해진 현대에도 무는 톡톡히 제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 밖에도 요소를 분해해 암모니아를 만드는 유레아제, 체내에 생기는 해로운 과산화수소를 분해하는 카탈라아제 등의 효소가 들어 있어 소화뿐 아니라 알코올과 피로 회복에도 그 효과가 뛰어나다. 최근에는 무즙이 체내의 니코틴을 없애는 데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효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섭취하려면 생무를 씹어 먹는 게 최고지만, 달고 싱싱한 겨울 무일수록 매운맛도 상당히 강하다. ‘이소치아시아네이트’라는 황 함유 성분 때문인데, 이 알싸한 맛이 항균과 항암 효과가 있는 항산화 성분이므로 피하지 말고 즐기는 편이 낫다. 정 매운맛이 싫다면 물에 씻기만 해도 성분이 물에 녹아 나온다. 식초를 담근 물에 담갔다 조리해도 매운맛이 덜한데, 이럴 때 소화 효소인 디아스타아제의 작용이 뚝 떨어지기는 한다. 다만, 식초가 비타민C 성분의 보존은 더 오래 지켜주기 때문에 융통을 부려 조리해보자.
출처: 인삼도 부럽지 않은 겨울 보약, 무